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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LPG폐지에 따른 대비책 세워놓았다"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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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장애인 전문 재단인 한국장애인재단. 에이블뉴스는 지난 23일 한국장애인재단 박춘우 사무총장을 만나 장애인재단의 운영 현황을 들어봤다. 특히 장애인재단의 설립의 단초가 되었던 장애인차량 LPG지원제도가 곧 폐지되는 것과 관련해 장애인재단은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더불어 지난 1986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발기인으로 출발해 울림터 초대 회장, 한국DPI 사무처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장애인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박 총장이 바라보고 있는 현재의 장애인운동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박 총장과의 인터뷰는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백종환: 현장에서 운동하는 젊은 세대들은 박 총장님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본인의 이력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박춘우: 1980년대에 장애인 문제를 자각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에는 고등학생이었기에 ‘아 그런 게 있구나’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참여를 하려다 보니 여러 가지 장벽들이 가로막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청년조직을 준비 중에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장애인문제에 대해 자각을 하면서 운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86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발기인으로 고 장기철 회장과 지장협을 탄생시키고 함께 활동했었다. 그 이후에는 DPI 사무처장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장애인재단의 사무총장으로 그동안 장애인의 권리를 주창하는 운동을 했다면 현재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장애인재단의 실무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백종환: 우리나라 장애운동에 있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이 울림터와 삼마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 대중들은 울림터가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배경으로 탄생했는지 잘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운동 역사에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울림터에 대해 잠시 소개를 부탁한다.

박춘우: 1981년 세계장애인해를 계기로 장애인문제에 대한 인식이 명망가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1980년대 우리나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의견들이 사회적으로 분출되는 시기였다. 그동안 침묵으로 국한돼 있었던 장애인 단체와 달리 울림터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사상을 기반으로 해 장애인 운동과 인권운동 등을 시작했다. 울림터가 장애인 운동과 인권운동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울림터 활동 당시 초대회장을 했었다. 이론적으로 박식하고 전문지식이 있어 회장을 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었다.

울림터의 많은 활동 중 주요활동을 보면 1981년 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의 개·제정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장애인복지법, 장애인고용촉진법 등의 개·제정 운동도 주도했다. 법안의 개·제정 운동 당시 힘든 점도 있었다. 그러나 야3당 점거농성 등을 통해 장애인복지법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 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시설 비리 척결 운동도 진행했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당시 수용시설의 장애인의 문제, 시설 운영 비리문제 등에 대해 운동을 했었다. 지금 보면 그런 운동의 지평을 열고 기반을 확장하는데 씨를 뿌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출발한 운동으로 지금은 많은 꽃들이 피지 않았나 생각한다.

백종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활동이나 시설 비리 척결 운동 등으로 당시의 활동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장애인운동의 선배가 된 입장에서 지금 후배들의 운동을 평가한다면?

박춘우: 상당히 고무적이라 평가한다. 울림터가 과거 그러한 초기운동을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지 못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것은 활동가들을 확대, 재생산 하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되고 그러한 점에서 울림터가 중도에 해산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역량들이 축척되다보니 곧 이어서 전장연, DPI 등으로 조직을 건설하고 새롭게 참여하게 됐다. 울림터가 그러한 면에서 장애운동의 지평을 넓히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후배들이 왕성히, 활발히 활동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에 반해 초기 장애운둥을 한 사람들의 연령은 사회 환경을 변화하는데 제약을 받아 운동성이 완화되는 시점에 뒤를 이어 장애운동을 할 수 있는 후배들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고무적인가.

백종환: 연령으로 인해 장애운동이 소진됐다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후배들은 예전에 운동에 참여했던 선배들을 평가할 때 너무 제도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박춘우: 후배들의 평가에 대해 반론은 없다. 그러나 자기 합리화를 한다면 연령대가 가진 제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젊음이 좋은 것 같다. 젊어서부터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그러한 사고를 가지고 한 일에 매진한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참 어렵고 존경받아야 할 만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후배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운동에 대해 같이 하자고 했으나 선배의 한 사람으로 연배가 있기에 직접적인 참여는 조금 힘들다. 그러나 운동의 경험들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함께 하려한다. 이러한 마음은 항상 있다.

백종환: 장애인운동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그 핵심은 장애인당사자들에 의한, 당사자들이 주도한 운동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장애인문제에 대해서는 장애인당사자들이 주도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인당사자주의 개념정리가 정립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박 총장이 생각하는 장애인당사자주의는 무엇인가?

박춘우: 장애인당사자주의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나는 장애인당사자주의는 원칙이라 생각한다. 수학으로 얘기하면 공식이다. 공식이 왜 이렇게 나왔느냐 이런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적용할 때 전제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혹여 당사자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사자주의를 장애인들만의 리그냐 하는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생물학적인 당사자주의는 반대한다.

그동안 장애인의 세력이 확장되어 왔다. 역량도 강화됐다. 그러한 부분에서 그동안 명망가 중심의 운동을 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 운동을 자연스럽게 장애인당사자에게 돌려주는 것들이 필요하고 본다. 전문가의 영역은 장애인당사자들이 사회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데 노력하는 등 또 다른 영역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 혼재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종환: 장애인 세력에 대한 확장 이야기가 나왔는데 박 총장님도 정치권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 시점에서 장애인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박춘우: 정치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떠나 장애인 정치세력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문제는 비장애인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점진적으로 접근할 때 해결된다. 장애인들이 직접 해결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직접 하기 어렵다는 판단들이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정치인, 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 중심에서 사고하는 정치인을 배출시키고자 했다. 즉, 우리의 문제를 정치 쪽에 노출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세력도 필요하지만 직접 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구가 있는 것 같다. 국회가 진행되면서 장애인 정치인들이 1명에서 2명으로 늘고 지금은 7~8명 된다고 한다. 이것은 그동안 장애인 단체들의 성숙된 역량이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정치를 통해 장애인문제를 해결하려는 맥락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정치와 장애인운동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장애인운동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장애인 운동은 긴 안목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내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성숙으로 많은 사람들이 배출되고,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이 열심히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애인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또 기회도 주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백종환: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박춘우: 그렇다. 그러나 그 기회를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하는 운동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백종환: 오늘 인터뷰의 중심인 장애인재단으로 들어가 보면 장애대중들이 장애인재단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재단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박춘우: 정부의 장애인차량에 대한 LPG보조금 지원제도와 보조금을 지원하기 위해 결재수단으로 도입한 신용카드 기능이 겸비된 신한카드(구 LG카드)의 도입이 장애인재단을 탄생하게 하는 핵심이었다.

그 동안에는 장애인LPG차량에 대해 상대적으로 LPG연료가 쌌기 때문에 장애인이 사용을 했다. 그러나 2001년도부터 에너지 가격의 합리화 정책에 맞춰 LPG가격이 상승했다. 상승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싼 연료를 타고 다니던 장애인과 영업용 택시에 대한 지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LPG인상 금액의 일정부분을 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재단이 탄생하게 됐다.

신한카드(구 LG카드)가 선정 됐고 신용판매액의 0.2%를 적립해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했고 이에 대해 정부가 사용처를 논의하던 중 재단을 운영해서 장애인단체를 지원하고 정부정책의 사각지대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사용하자는 장애인계와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래서 2년여 끝에 장애인단체를 지원하는 민간재단인 장애인재단이 어렵게 설립됐다.

백종환: 그렇다면 현재 장애인재단에는 어느 정도의 기금이 적립돼 있고 매년 사용하는 금액은 어느 정도 인가?

박춘우: 현재까지는 100억원 정도 적립돼 있다. 재단에는 한해에 35억원 내외가 적립된다. 그 중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3억원 정도를 사용하고 사업비로는 10억원 정도의 규모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머지 금액은 적립을 하고 있다.

백종환: 10억원 정도가 지원사업에 사용된다고 했는데 어떠한 사업에 지원 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박춘우: 지난해에는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위한 인식개선이라던가 법·제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사업을 지원했다. 올해에는 기존의 단체들에 대한 지원 뿐 아니라 장애인계의 미래를 대비하고 투자해야한다는 의견이 있어 자조그룹, 장애대학생 육성 프로그램, 장애인평생교육 등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최근 삶의 질 향상으로 장애인의 경우에도 문화향유에 대한 욕구가 많이 발생하고 있기에 문화향유지원사업을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도 장애인 단체와 현장의 소리가 직접 그리고 잘 전달된다는 장애인재단의 특성을 살려 장애인계에서 요구하는 게 뭔지를 알고 계속적으로 심도 있게 지원하는 것을 추진할 계획이다.

백종환: 장애인재단은 신한카드(구 LG카드)의 장애인복지기금의 기부로 만들어진 재단이다. 그렇다보니 장애인차량LPG지원제도가 폐지될 예정이어서 큰 타격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박춘우: 사실 LPG유류가격 유도 정책을 정부가 2002년부터 시행하면서 도입한 보조금 제도는 5년을 기약한 일몰제였으나 일몰시점에서 장애인계의 요구로 2009년까지 연장이 됐던 것이다.

재단의 설립 초기 보조금 제도가 일몰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장애인고용장려금정책을 예로 보면 장애인고용장려금정책 초기에는 기업에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 부담하는 부담금이 많이 걷혀 장애인고용장려정책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장애인고용장려금제도가 축소되면서 장애인고용정책도 어려워진 선례가 있다.

재단의 경우 이것을 거울삼아 어렵게 조성된 기금을 장애인계의 자산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사회의 여론이 있었고 그래서 재단으로 이전되는 금액을 전부 사업비로 지출하지 않고 일정 정도의 금액은 조성했다. 재단 초기부터 열심히 적립하고 사업한 결과, 현재 100억원이 적립돼 있는 상황이다.

100억원이 충분한 목표액은 아니며 100억원이 조성됐기 때문에 사업을 더 집행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만일 LPG정책이 일몰된다고 했을 경우에는 정책이 일몰하지 않도록 하는 활동에 대해 노력하고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LPG정책이 일몰된다면 그동안에 조성된 금액과 기업후원이라는 모금방법들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한카드(구 LG카드)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또 그간의 관계도 있으니 제휴카드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고 지금의 금액만큼은 할 수 없겠지만 일정정도의 금액을 사회적 공익사업으로 환원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 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재 이사회에서 5명의 이사가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재단의 장기방향, 운영계획, LPG폐지에 따른 계획 등을 포함하는 논의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다.

백종환: LPG정책이 일몰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 기업후원과 모금방법 강구, 신한카드(구 LG카드)의 적립환원 등 3가지 대안 모두가 쉽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이사회에서 어떤 발전 방안이 논의될 지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모습에서 장애인재단의 향후 모습이 우려스럽다.

박춘우: LPG면세 등 제기된 문제점 하나하나가 쉬운 것은 없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LPG면세와 관련해서는 면세를 시행하면 원천적으로 기금이 조성될 근본이 없어진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따져봐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면세를 하는데 있어 가격은 얼마로 할 것인지, 지불에 대한 결재수단은 어느 것으로 할 것인지 등이 있다. 종래와 같이 신용카드 기능이 겸비된 카드로 한다면 현재 기금은 LPG사용 결재금액의 0.2%가 아닌 신한복지카드신용판매액의 0.2%를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한카드가 현행과 같이 결재수단으로 유지된다면 신한카드에서 사회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업 기부는 어려운 점이 있다. 세제 지원이라든지 기부금모금특별법에 따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있기에 기업후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기부를 받는다 하더라도 액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적립된 금액을 최소 운영비로 사용하고 기업후원금을 지원사업비로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재 10억원 이내 규모로 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기에 기업후원으로 들어오는 금액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성재단의 경우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에 그곳을 벤치마킹 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마지막으로 제휴카드로서의 신한카드가 기여할 수 있느냐는 제안과 관련해서는 정책적으로 LPG정책이 일몰된다고 하더라도 신한카드를 이용하는 기존의 장애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그런 점을 기업에 피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공헌, 사회환원의 측면을 통해 좋은 관계를 맺었으니 지속적으로 업무를 제휴할 수 있도록 설득해 내야 한다. 금액에 있어 감소되는 부분은 있겠지만 가능하지 않겠냐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출처 : 에이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