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최초 한글점자 완성본 훈맹정음 완성
천대받는 송암 박두성 선생 묘역…접근 어려워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연구·보급을 장려하기 위하여 정한 날이다.
이렇게 매년 돌아오는 한글날에는 한글의 올바른 사용,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에 대한 비판, 세종대왕의 업적 기념 등 한글과 관련한 많은 기사와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한글날에는 좀 더 특별한 한글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바로 시각장애인의 한글인 훈맹정음과 이 훈맹정음을 위해 평생을 바친 송암 박두성 선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당시에는 한자를 우리의 문자로 사용하였는데 한자가 어려워 일반백성이 사용하기에는 힘들었다. 이에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쉽게 문자를 사용하여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창제한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그렇다면 훈맹정음은 무엇인가? 훈맹정음은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시력의 상실로 문자를 활용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문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훈맹정음이다. 그리고 이 훈맹정음을 창제한 사람은 바로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다.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과 처음으로 연을 맺은 것은 조선총독부가 조선인 유화정책으로 설립한 제생원(장애인 수용시설) 맹아부로 발령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시각장애인과 만난 박두성 선생은 혼신을 기울여 맹아교육에 열중하던 중 그 당시 사용하던 뉴욕식 4점형 점자의 불편함을 깨닫고 한글 고유의 점자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1920년부터 한글점자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1923년 3.2점식 한글점자를 만드신 후 비밀리에 ‘조선어 점자연구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926년 11월 4일 최초의 한글점자 완성본 '훈맹정음'이 완성되어 발표를 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어 말살정책을 펴오던 총독부도 "그 모든 장애에서 이들을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글을 가르쳐 정서를 순화시키는 길밖에 없다"라는 박두성 선생의 편지를 통하여 훈맹정음의 교육을 승인하였다.
이와 같이 한 평생을 훈맹정음 연구에만 몰두하였던 송암 박두성 선생은 1962년 광복절에 국민포장을 수상하고 이듬해인 1963년 8월 25일 76세의 일기로 서거하여 인천시 남동구 수산동에 안장되어 있다. 그리고 사후에도 업적을 인정받아 1992년 은관 문화훈장을 추서 받고 2002년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의 묘지는 위대한 업적과는 반대로 일반인도 어렵게 진입하는 비좁고 굽은 길로 되어있다.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존경받는 박두성 선생의 묘소는 정작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다가가기에 가깝고도 먼 송암 박두성 선생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그의 묘소에는 그의 애맹정신을 이어 받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노산 이은상 선생의 추모시를 담은 추모비만이 외롭게 그의 묘소를 지키고 있다.
이번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업적을 계승받아 문자생활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에게 훈맹정음을 통해 문자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 송암 박두성 선생의 업적에 대해 조명하여 좀 더 특별한 한글날을 맞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을 보내온 임은숙씨는 현재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총무기획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에이블뉴스<기고/임은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