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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중증 고용해결책은 근로지원서비스다”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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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지원서비스 제도화되면 고용 안정 달성
정부예산 받아도 자립생활센터 관변화 안돼

[릴레이인터뷰]16.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고관철 상임대표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장애인복지의 틀을 새롭게 결정할 가장 중대한 요소이며, 자립생활을 완성하는 핵심적 과제다. 정부는 장애인복지의 초점을 노동에 맞추어야 한다. 그 시작은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제도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고관철 대표는 지난 8월 28일 본지 백종환 편집국장과의 인터뷰에서 ‘장애인고용문제’를 자립생활을 실현하는 핵심 사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중증장애인의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서는 근로지원인서비스가 빠른 시일 내에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고 대표는 “근로지원서비스가 활동보조서비스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근로지원인 파견사업을 추진하면서 영리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중증장애인에게만 근로지원인을 파견한다는 방침을 세움에 따라 자립생활센터에 근무하는 중증장애인들은 근로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도록 정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고 대표는 “공단 측에서는 효율성을 따진다고 하지만 사실 자립생활센터만큼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곳은 없다. 근로지원서비스를 통해 한 장애인의 역할이 어느 정도까지 변화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공단이 정한 기준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서비스의 본질을 잘못 판단해 생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자립생활운동은 하나의 제도에 집중되기보다 중증장애인의 삶 전반을 다뤄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장애인복지법 개정, 활동보조서비스 제도개선 등의 운동을 펼쳐왔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그들은 이제 ‘근로지원인서비스 제도화’와 ‘장애인복지소비자연대 구성’ 등을 차기과제로 제안하고 있다.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자립생활의 이념은 무엇인지, 자립생활운동의 올바른 발전방향은 무엇인지 들어본다."

백종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에 대한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협회 설립의 목적은 무엇이고, 얼마나 많은 센터들이 가입해 있는가?

고관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목표로 하는 자립생활센터와 단체들이 가입돼 있는 연대체다. 지난 2006년 3월 출범식을 열고 첫 발을 뗐다. 그 이전부터 자립생활센터들은 ‘연합회’와 ‘협의회’로 나눠져 있었다. 통합된 전국조직을 만들어 자립생활센터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보자는 의도로 통합을 시도했다.

당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뭉치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해산키로 했다. 하지만 통합과 해산 절차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 서울지역센터들이 한자연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들을 중심으로 ‘협의체’가 유지됐고 현재와 같은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한자연에는 약 40개의 자립생활센터가 가입돼 있다. 강원지역을 빼고는 전 지역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전국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단체는 자립생활에 관련된 법제정활동, 활동보조서비스 등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올바른 시행촉구, 자립생활 리더·실무자교육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백종환: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근로지원인서비스에 대한 질문부터 드려보겠다. 근로지원인서비스는 영리기업에 근무하는 장애인들만 지원하도록 결정됐다. 제도가 아니라 하나의 사업이기 때문에 사업의 효과성과 예산의 범위를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노동부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한자연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고관철: 근로지원인사업이 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도 적용돼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립생활센터만큼 최중증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직장이 없다는 것이다. 영리기업들이 ‘중증장애인’이라고 해서 고용하는 장애인들은 대부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을 말한다. 휠체어만 타고 있어도 그들이 보기에는 매우 중증의 장애인인 것이다. 하지만 자립생활센터에서는 휠체어장애인들은 매우 보편적인 인력이고, 그보다 더 심한 근육장애인이나 척수장애인들도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단 측에서는 효율성을 따진다고 하지만 사실 자립생활센터만큼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본다. 중증장애인에게 근로지원인을 파견했을 때 이 사람의 역할이 어느 정도까지 변화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보면, 자립생활센터는 가장 훌륭한 케이스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제도가 아니라 사업이기 때문에 그 같은 기준을 정했다는 설명을 납득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서비스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기준이다.

백종환: 근로지원인 사업이 ‘장애인 근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비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 목적을 두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듯 하다. 사업이 아닌 제도로 거듭난다면 이 같은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고관철: 근로지원인사업은 사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에서 노동부의 사회적일자리사업으로 신청을 했던 사업이다. 그런데 노동부에서는 한자연의 프로포절은 탈락시키고, 자기들이 편한대로 설계를 해 산하기관인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측에 넘겼다.

문제는 어느 기관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느냐에 있지 않다. 다만 현재의 근로지원인사업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당사자의 필요에 의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를 지원하는 형태로 가고 있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근로지원인서비스는 장애인당사자를 지원하는 서비스가 돼야지 사업주를 지원하는 서비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업주에게 초점을 맞추면 장애인은 놀고 근로지원인은 일하는 주객전도현상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근로지원인은 장애인노동자의 신체적·심리적 지원자가 돼야 한다. 즉 장애인근로자가 처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동반자적 위치에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이나 고용인이 입장에서서 중증장애인의 직업적 문제를 바라본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로지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근로지원인은 활동보조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당사자를 옹호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백종환: 근로지원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

고관철: 장애인들은 항상 불안한 노동환경 속에 놓여있다. 어렵게 취업이 된다고 해도 근로환경이나 근로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해고를 당하거나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로지원인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근로지원인은 장애인이 노동을 하는 시간동안 한 공간 안에서 장애인의 근로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장애인에게 있어 노동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노동’은 장애인복지의 틀을 새롭게 결정할 요소다. 따라서 노동과 복지는 같이 가야한다고 본다. 중증장애인에게 노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과 역량이 없다는 전제하에 복지차원으로 지원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가령 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과 차별 등 그 모든 책임은 국가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노동환경을 갖추고 노동을 지원하는 사람을 파견했을 때는 장애인들의 근로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생산적복지의 틀 속에서는 장애인의 지역사회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복지예산의 상단부분을 노동을 통해서 환원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훨씬 이득이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무조건 복지영역으로 끌어내린다면 언제까지나 정부가 먹여 살려야 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국가는 이제 ‘장애인에게 노동을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전적으로 지원을 할 것인지’ 정책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노동을 통한 지원에 중점을 둔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근로지원인제도를 도입하고 모든 영역에 대해 보장해야 한다. 또한 더불어 일자리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백종환: 근로보조인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피력을 하셨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대한 사안임에도 이 문제가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타단체들에서도 이 사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한데.

고관철: 정부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근로가 아닌 복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장애인 당사자들도 기초생활수급권 등 정부지원을 받는 것에 익숙해졌다. 즉 사회적 노동현장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환경도 뒷받침돼있지 못하다. 이런 환경들 속에서 중증장애인들은 직장생활에서 서포터 역할을 해줄 근로지원인의 필요성을 인식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근로지원인서비스가 중증장애인 당사자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

장애인단체들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고 본다.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단체조차 지금까지는 경증장애인 중심의 고용이 주를 이뤘다. 중증장애인들이 핵심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도 있지만 사실 이들 단체들이 생겨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근로지원인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고 있어도 이슈화시킬 만큼 시급한 문제라고 보지 않는 듯 하다.

백종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별도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통합 움직임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자립생활센터 연대단체가 둘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자립생활단체가 꼭 하나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둘로 나뉘어져 있기에 좋은 점도 있겠지만, 자립생활운동이 초반이어서 산적한 과제들이 많은데 힘이 분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고관철: 의도할 수 없다고 본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운동의 과정 속에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어느 시기에는 통합하라고 사정해도 안 되는 때가 있고, 또 다른 어느 시기에는 하지 말라고 말려도 통합이 될 수도 있다. 오직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회적 현상의 자유로움을 막아 정해진 틀 속에서 정체되게 할 수도 있다.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협력자 혹은 조언자가 되어준다면 하나일 때보다 오히려 더 다양한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다양한 형태로도 하나가 될 수 있다. 각자의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후에는 체계화된 네트워크를 형성해 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한자연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복지발전대안연대, 한국자립생활정책협의회 등 자립생활관련 연대체들이 ‘자립생활연대회의’ 같은 논의체제를 만들어 협력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백종환: 한자연은 자립생활운동 과정에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너무 강조하기보다는 자립생활이라는 큰 틀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은 장애인운동 내에서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었던 것 같다. 활동보조서비스가 강조되면서 놓쳤던 부분은 뭐가 있는가?

고관철: 자립생활이라는 것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뜻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자립생활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직업, 사회활동, 역량강화, 교육 등 여러 요소가 종합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 활동보조라는 것은 자립생활의 시작이다. 활동보조인을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 사회적 활동영역까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자립생활에 불씨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립생활은 삶의 전반적인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활동보조에 지나치게 국한한다면 다른 중요한 문제들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 운동의 과정에서 자립생활이라는 큰 틀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백종환: 지난 7월 출범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소비자연대'의 집행위원장 직을 맡고 계시다. 이 연대체는 자립생활센터 뿐 아니라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협회 등 유형별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런데 아직 구체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이름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가?

고관철: 출범한 다음날 보건복지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자리에서 이상영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관은 “조치를 취할 것이니 9월 달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답변했다. ‘180시간 특례조항 발동’ 등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했기 때문에 복지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의 수정안이 발표되면 그에 적합한 대응을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활동보조소비자연대가 아니라 장애인복지의 모든 영역에서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연대로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더 크게는 ‘장애인복지소비자조합’을 꿈꾸고 있다. 서비스의 질과 단가에 대한 평가도 하고, 이를 토대로 소비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체제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활동보조서비스가 파행을 겪는 것도 정부가 모든 권한을 갖고 서비스체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정부의 개입이 없이 소비자, 노동공급자, 정부의 금전적 지원 이 세 가지 축이 맞물려서 자율적인 서비스체계가 구성될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취합하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연대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는 복지서비스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활동보조밖에 없기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소비자연대’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했다. 앞으로 장애인복지서비스를 다양화시키는 작업에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 또한 소비자들의 의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도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이다.

백종환: 일각에서는 자립생활센터가 정부지원을 받게 되면 관변화가 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관변화는 아니더라도 예산을 지원받게 되면, 내야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되지 않는가? 현재 장애인단체들이 정부 예산을 받으면서, 운동성을 잃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이라고 보인다. 관변화가 될 것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관철: 정부 예산을 받으면 운동성을 잃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은 ‘운동’을 포인트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립생활센터는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운동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자립생활센터는 ‘역량강화’, ‘권익옹호’, ‘자립생활지원’ 등 3가지 기조에 의해 바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 하나가 없어진다면 쓰러질 것이다.

만약 ‘권익옹호’라는 분야가 없어진다면 복지관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역량강화’나 ‘자립생활지원’이 없다면 유형별 장애인단체들과 구분됨이 없을 것이다. 자립생활센터는 이 3가지의 역할을 적절하게 잘 감당해내야 한다. 운동은 이 같은 기조들을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돈을 받으면 관변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기관이 ‘권력화’되면서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로인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할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립생활센터들은 지역사회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나 복지관들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자립생활센터들이 감당해내고 있다. 다만 정부지원을 받은 후에 그 센터들을 얼마만큼 건강하게 가꿔갈 것 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져야한다. 얼마만큼 비판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립생활센터는 지역운동의 근거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무조건 혼자 서있다고 근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중 하나가 정부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지원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고 본다.

백종환: 관변화 지적을 하면서 '복지관처럼 될 것이다'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복지관처럼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인데, 이 말은 현재 복지관이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복지관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고관철: 장애인복지관은 이용시설이다. 이용하려면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증장애인들은 찾아가야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복지관이 직접 중증장애인들을 만나러 가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고 훌륭하더라도 이용할 수 없다면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곳이다.

또한 복지관은 질적인 성장보다는 양적인 성장에 치중된 경향이 있다. 장애를 가진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공급자의 관점으로 사업과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선택권이나 주체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데 한계점이 있다. 복지관의 전문가가 지역의 자원을 찾아 당사자에게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당사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가 중요하지만 장애인의 개별욕구는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백종환: 세계장애인한국대회에서 자립생활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요 의제는 어떻게 되는가?

고관철: 주요의제는 ‘자립생활의 세계적 연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있다. 즉 세계연대기구 구성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다. 이렇게 각국의 장애인들이 모여서 ‘자립생활’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독립된 시간과 공간에서 논의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 각국들이 참여해서 자신들 국가의 자립생활 현황에 대해 교류하고,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국제적 연대기구가 설립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번 대회에서는 임시의장과 임시연락사무실은 결정하자고 일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 나카니시 대표와 합의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관을 만들고 각국의 대표들이 만나 조직을 만들어갈 것이다. 올해는 힘들겠지만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에는 독립적인 세계조직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종환: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회적지원체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인지 자립생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아프리카국가들도 자립생활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그렇다면 세계적인 연대기구로서의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은데.

고관철: 유럽지역에서는 IL에 대해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회적 지원체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모나 가족들에 의해 제도들이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사자가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당사자들로부터 운동이 시작됐고 운동주체들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교감을 충분히 가능하다. 유럽이 참여를 하지 않더라도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이후 세력을 확대해 나가면 될 듯 하다.

백종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세계장애인대회를 겨냥해 장애민중행동대회를 개최한다고 예고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관철: 나쁘게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에는 공감을 한다. 전장연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모인 세계장애인대회 장소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외국에서 오신 분들 앞에서 시위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백종환: 대선을 앞두고 있다. 대선에서 공약화해야 할 자립생활정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관철: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36억원을 내어 자립생활센터를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지켜지지는 않았다. 시·군·구까지 자립생활센터가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지관처럼 국가에서 지어 누군가에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당사자들이 필요에 의해서 운동의식을 갖고 참여해야한다고 본다. 자립생활센터를 확대하고 지원하는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중증장애인 노동에 대한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근로지원인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백종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가입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일단 소문의 진위 여부를 밝혀 달라. 가입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솔직하게 밝혀주시고, 가입 여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 달라.

고관철: 장총련으로부터 가입제의를 받을 적은 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한자연은 법인단체가 아니라 임의단체이기 때문에 연대체에 가입을 하는 것보다는 조직을 좀 더 튼튼히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가입을 하지 않고 있다.

백종환: 마지막 질문이다. 장애인당사자주의가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하는가? 고 대표가 생각하는 당사자주의는?

고관철: 생물학적 정의의 당사자보다는 이념적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적 존재로서의 당사자가 중시돼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당사자주의의 이념적 가치를 얼마나 이해하고,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당사자주의는 한마디로 '자신의 주체성을 찾는 것'이라고 본다. 로빈슨 크로스처럼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장애인임을 인식하고 사회 속에서 역할과 권리를 찾아가기 위해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류라면 장애인들이 당사자라는 말을 꺼낼 필요가 없다. 비주류이기 때문에 당사자주의라는 것을 말하고 이념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면 당당해질 수 없다.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권리가 시작된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만큼 차별을 받고 있는지, 당당한 주체로서 사회와 정부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를 인지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모른다면 당사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당사자주의는 말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출처 : 에이블뉴스<정리/주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