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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형마트 크기 공간에 보조기기가 가득200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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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스웨덴, 전국 곳곳에 상설전시장 운영
접근 가능한 평등사회, 소비자 참여 등 지향

더 이상 비운의 인어공주는 없다

깊고 깊은 바닷속 아름다운 궁전, 바다임금의 딸 여섯 공주들 중에서도 가장 예쁜 막내 인어공주. 열다섯 살 생일에 처음으로 올라와 본 물 위에서 멋쟁이 왕자를 구해준 이후 가슴 아픈 짝사랑에 빠졌다.

매일 밤 왕자를 그리워하다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그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목소리를 마녀에게 넘겨주고 결국 두 다리를 얻었다. 바닷가에서 그녀를 발견하고는 한 눈에 반한 왕자. ‘당신은 누구인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녀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다.

왕자의 곁으로 오기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버렸다는 사실도, 지난 번 난파된 배에서 왕자를 구해낸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도 말 할 수 없어 안타깝게 눈물만 흘리던 인어공주. 결국 왕자를 이웃 나라 공주에게 떠나보내고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덴마크가 낳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없었던 인어공주의 답답한 심정, 어느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날의 덴마크에서는 인어공주와 같은 비운의 사건이 재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 정부의 전폭적인 장애인 보조기구 지원 정책이 인어공주의 답답한 속마음을 후련하게 풀어주기 때문이다.

후천적 사고로 언어장애를 가지게 된 인어공주는 지방자치단체(community) 사무실의 장애인 보조기구 전담과 직원을 찾아간다. 인어공주의 불편 정도를 확인한 해당과 직원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인어공주에게 보완대체의사소통기구를 제공해 준다. 본래 목소리처럼 예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인어공주는 왕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왕자에게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왕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포기했으며, 지난 번 왕자의 생일에 난파된 배에서 왕자를 구출해 낸 것도 본인이었음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 생긴 다리가 너무 아프고 힘들 때면 역시 정부에서 지급받은 휠체어를 이용해서 편안하게 왕자와 함께 다닐 수 있다.

그 후에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차지했는지, 그래서 결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거기부터는 두 사람의 연애감정에 달린 문제이니…. 그렇지만 인어공주와 이웃나라 공주와의 경쟁에서 장애로 인한 불리함이 덜해졌을 것이라는 점은 예측해 볼 수 있다.

얼마 전 영국의 레세스터 대학이 실시한 조사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1위로 꼽힌 덴마크와 7위로 꼽힌 스웨덴을 다녀왔다.

인구 550만 명에 기대수명 77.8세, 1인당 GDP 4만7천500 달러의 덴마크와 인구 900만 명에 기대수명 80.5세, 1인당 GDP 3만9천700 달러의 스웨덴.

바이킹의 후예, 아름다운 자연 그러나 형편없는 날씨, 스칸디나비아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노인들의 천국, 강력한 복지·의료·교육정책과 높은 세율…. 두 나라를 아우르는 많은 공통점만큼이나 장애인 보조기구 정책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았다.

각 주마다 보조기구 상설전시장 설치

앞서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두 국가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보조기구를 활용하기위해 ‘사회서비스법’, ‘보건의료 서비스법’ 등의 법에 의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장애인·노인 서비스 기관이나 코뮨(Municipality, 시) 사무실의 보조공학 전담팀과 접촉하면 된다. 대부분의 코뮨 해당 과에는 별도의 교육을 받은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가 채용되어 장애인과 노인에게 필요한 보조기구를 당사자와 상담 후에 처방해주고, 처방된 보조기구를 정부가 구입해서 장애인에게 대여해주고 있다. 코뮨에 따라 보조공학 전담과의 직원은 보통 5~15명(많은 곳은 90명도)이 근무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기구의 소유권은 정부에 있지만, 대여비용도 없고, 대여기간도 한정돼 있지 않아 장애인 자신의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제품의 상한액도 없고 내구연한도 없으며, 상태에 따른 수리나 교체도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장애인의 장애 정도 변화나, 사망, 보조기구의 수명 초과 등으로 효용성이 떨어진 보조기구들은 정부가 수거하는데, 이렇게 수거된 기구 70% 정도는 전문인의 수리와 세척과정을 거친 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시 대여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위해서 두 나라는 모두 주정부(county 또는 region)마다 한 개씩 보조기구 상설전시장을 갖춘 공학지원(Technical Aids)센터를 두고 있다. 스웨덴의 21개 주정부 중 하나인 베스티말란트 주정부(Vastmandland county)는 10개 코뮨이 합쳐진 곳으로, 26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700명 정도의 장애인 서비스 인력이 병원, 보건소, 장애인·노인 서비스 기관, 자치단체(시) 사무실 등에 채용되어 있다. 연수단이 방문한 베스티말란 주에서 운영하는 공학지원 센터인 히젤프메델스센트룸(HjälpmedelsCentrum)은 대형 할인매장 만한 크기의 공간에 물류창고와 전문 수리·세척실, 전문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총 40여명이 근무하는데, 이 중 기구를 수리하는 엔지니어가 10명, 재활용 제품의 회수와 이동(물류)을 전담하는 직원만도 14명이다. 베스티말란 주에서는 보조공학 기구 구입에만 연간 3천800만 크로나(우리 돈으로 약 52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스웨덴의 다른 주들도 각각의 규정에 의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덴마크, 장애인보조기구 관련 예산 연 7천200억 원에 달해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보조기구의 직접 서비스를 코뮨, 주정부가 주도하는 동안 국가는 자국 내에서 유통되는 보조기구에 대한 검사와 DB 구축을 통한 정보제공, 전문가 양성과 각종 컨퍼런스 개최 등을 실시한다. 이러한 사업을 위해 두 국가는 모두 국립 보조공학센터(Assistive Technology Center)를 중앙정부가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정책의 흐름이 유사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개국은 장애인 보조기구 품질 검사와 표준화, DB 구축 등의 작업을 서로 연계하거나 역할을 분담하여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덴마크와 스웨덴의 보조공학 센터는 자국내 국민들에게 지원해주는 장애인 보조기구에 대한 32,000여 건의 DB를 공동으로 구축한 후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국가의 언어로 제공하고 있다. 보조기구 인증을 위한 검사를 할 때도 예를 들어 덴마크에서 침대, 호이스트, 보행보조기구를 담당하면 스웨덴에서는 휠체어 검사를 담당해 그 결과를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나라간 역할 배분과 협력, 정보 공유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34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덴마크 국립 보조공학 센터는 연간 4천3백만 크로나(한화 약 73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는데, 이중 1천100만 크로나(한화 약 19억원)는 국가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검사 비용, 교육비용 등 서비스 판매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

덴마크 정부가 연간 보조공학과 관련해서 지출하는 예산은 연간 42억 크로나(한화 약 7,200억원)에 달하는데 몇 년 전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다가 최근 일고 있는 복지비용 지출에 관한 논란으로 현재는 정체 내지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덴마크의 인구 규모가 우리나라의 8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2005년도 보조기구 관련 공적급여 지출액 517억과 엄청난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곧 스웨덴과 덴마크의 보조공학 관련 산업이 세계시장의 우위를 차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연대, 보완, 책임’, 장애인 보조기구 정책의 3원칙

그러나 덴마크와 스웨덴의 꿈같은 보조기구 지원 정책이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스칸디나비아의 사민주의 국가들과 유럽의 복지 국가들이 겪고 있는 것처럼 두 나라 모두 국민들의 높은 세금 부담으로 인해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연금을 통한 노후 소득 보장, 무상교육, 각종 복지·의료혜택과 육아정책, 쾌적한 환경의 유지를 위해서 두 나라 국민들은 소득의 40%에서 많게는 79%까지도 세금으로 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소위 복지병, 복지국가 위기론이 대두되어 일정 정도의 자기 부담과 복지혜택 축소 등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보조공학의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에는 일부 자부담 부과가 고려되거나 재활용된 중고 장비를 사용하기 싫어하는 노인들이 사설 업체에서 개인 부담으로 직접 구입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두 나라의 정책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기조는 ‘접근 가능한 평등사회를 만들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편익을 누리면서, 당사자의 희망과 필요에 입각한 서비스가 지원되도록 소비자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 정부는 장애인 보조기구의 지원 정책과 관련해서 ‘장애 문제에 대해 사회전체의 연대원칙(solidarity principle) 속에 책임을 져야 하고’, ‘장애인의 불편에 대한 사회의 보완원칙(compensation principle)’, 보조공학 정책과 관련한 책임을 사회부(Ministry of Social Affairs)에서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부, 교육연구부, 문화부, 주택건축부, 보건부 등과 같이 장애인의 생활영역이 연계되는 각 부처에서 가지는 ‘영역별 책임 원칙(sector responsibility)’이라는 3가지 주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런 건강한 정책기조와 부패 없이 투명한 행정시스템이 두 나라의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이 세계 42위를 차지한 부패 인식 지수에서 덴마크가 4위, 스웨덴이 6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은 무급의 명예·봉사직이며 의원, 장관과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도 비서나 기사, 관용차량 등이 지급되지 않아 소형차를 손수 운전하면서 일반 국민들과 똑 같이 주차위반 딱지를 떼게 된다고 한다. 이런 모습들이 두 나라가 높은 세금을 유지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세 저항에 부딪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국가의 기본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덴마크와 스웨덴의 정책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애인을 평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의 한 사람으로 똑 같이 존중하고, 사회적 책임 의식에 입각해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연대 노력하는 두 나라의 원칙과 효과적인 행정 시스템은 이제 시작단계에 서 있는 우리나라의 장애인 보조기구 정책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글은 지난 5월 6일부터 13일까지 덴마크와 스웨덴의 장애인보조기구 서비스 현황을 살펴보고 돌아온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편의증진팀 남세현 연구원이 보내온 글입니다.

출처 : 에이블뉴스<기고/남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