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요구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자립생활이자 정치
올해와 내년은 누가 뭐래도 정치의 해이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이 올해와 내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진보정당에서 일하다보니 정치의 최전선에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립생활도 정치도 모두 능동적 행동을 동반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자신에 관한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자립생활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는 장애인들이 선택할 꺼리들이 별로 없다. 장애 정도가 중증이면 중증일수록 더욱 그렇다. 결국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려면 스스로 사회에 요구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도 요구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동네의 찻길이 있는데 그 찻길을 건너려면 동네를 한 바퀴 삥 돌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관청에 마을 앞에 횡단보도를 깔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처음엔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러다 이 사람에게 동조자가 생기고 요구가 강해지면 그제서야 미적미적 움직인다. 그리고 더 강한 요구가 들어오면 어느 순간 마을 앞에 횡단보도가 생긴다.
또 한 예로 어느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이 외출하려고 하는데 활동보조인이 없다면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은 외출을 못하는 것인가? 중증장애인은 자신의 처지를 사회에 알리고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요구한다. 역시 처음엔 들은 척 안 한다. 그러다가 동조자가 생기고 더 강한 요구가 들어와야 미적미적 움직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생겨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은 자유롭게 외출한다.
난 이런 과정들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려내는 것, 알려내고 쟁취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나 한 사람만 잘 살겠다고 법을 만들진 못한다. 자립생활도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보편적 가치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다.
자립생활은 장애인도 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사람답게 살 권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아직은 장애인들에게 녹록한 사회가 아니다. 그렇기에 자립생활 장애인은 더욱 정치적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대선이 있고 총선이 있다. 대통령을 잘 뽑는 것도 국회의원을 잘 뽑는 것도 정치지만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사람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살 수 있게 지역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 진정 자립생활이며 정치일 것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칼럼니스트 박정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