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발레를 멈출 수는 없었다. 모든 음(音)이 완벽하게 차단된 고요의 세계에서 춤추던 ‘청각 장애인 발레리나’ 강진희(35)씨. 대학 무용과를 나와 프리마돈나로 활약하다가 2004년 8월 어느 날 돌연 무대에서 사라졌던 그녀가 긴 휴식에 마침표를 찍고 최근 재기의 날갯짓을 시작했다.지난달 중순 경기도 양주 자택 근처 교회에 자신이 창단한 창작발레단인 ‘조이 발레 선교단’ 사무실 겸 연습실을 차리고 발레단장으로 본격 활동을 개시했다. 공개 오디션을 통해 20대 발레리나 2명(비장애인)도 단원으로 뽑았다. 인원을 늘려 올해부터는 공연도 시작할 예정이다.
다시 춤추는 그녀를 만나러 자택이 있는 경기도 양주를 찾아갔다. 물 빠진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평범한 30대 주부 차림새였지만 긴 두 팔을 우아하게 내저으며 발레 동작을 취할 땐 무대에 선 프리마돈나 그대로였다.
한양대 무용과를 나와 ‘조승미 발레단’의 프리마돈나로 활동해 오던 그녀가 발레 슈즈를 벗었던 건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잘못된 시선 때문이었다. 발음을 정확히 하기 어려운 그녀는 수화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아픈 기억의 실타래를 띄엄띄엄 풀어놓았다. “절 싫어한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춤을 잘 춰도 ‘쟤…는…청각 장애인…이야’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상을 타도 (잘해서 수상한 게 아니라) 안 들리는데 춤을 추니…까 받은 거야’ 했고요…. 더…이상은 제가… 설 자리가 없어서….”
무대를 떠난 뒤엔 나사렛대학원 사회복지과에 입학해 공부하며 딸(11)을 키우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고 춤 추고 싶다고 느낀 장애인 후배도 있었을 텐데…. 혹시 그들이 나 때문에 절망해 포기하면 어쩌나…. 그래서 다시 시작했어요.”
스스로의 말대로 그녀는 같은 처지의 후배들에게 희망을 준 여성이다. 태어날때부터 자동차 경적 소리(100㏈)조차 못 듣는 그녀는 중1 때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발레를 시작했다. “보청기를 끼면 ‘아, 곡이 시작됐구나…끝났구나…’ 강약 정도는 느끼죠.” 속으로 하나, 둘, 셋 세면 턴하고, 얼마쯤 쉬다가 점프 하는 식으로 빠르기에 적응했다. 발레 공연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리듬을 ‘눈으로 느꼈다’.
무대에서 박수 소리를 음악 소리로 착각하거나 음악이 끊긴 줄 모르고 계속 춤춘 일도 있었다. 그럴수록 강씨는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몰두했다. 발톱 열 개가 빠져 나갔다. 같은 청각 장애인이면서 화가인 남편이 우유 배달까지 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춤춘 끝에 무대 위에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녀는 요즘 아침마다 연습실에 ‘출근’한다. 20여 년간 반복해온 동작들을 하나씩 되풀이하다 보면 몸이 어느새 희미해졌던 발레의 기억을 되찾아간다. “‘이걸 왜…시작했지’ 하는 생각,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다시 하는 건 세상에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 제 유일한 ‘무기’는 이것 하나뿐이니까요. 이젠 죽을… 때까지 맘껏 춤추고 싶어요.”
출처 :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