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와 장애인 끌어안기`특별 좌담회◆
전세계 인구 중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총인구 중 10% 정도는 정신적ㆍ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총인구 중 약 3%인 150만명 정도가 장애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보건당국에 등록된 수를 말하는 것으로 미처 등록하지 않은 사람까지 합하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장애인 중 90%가량이 사고 등 후천적인 영향으로 장애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색안경을 낀 채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
장애인과 정상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사회를 나누는 하나의 잣대가 되고 있다.
장애인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에 복귀하기 위한 기반도 부족하다.
아직도 지하철역에 휠체어 이동용 리프트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있으며 공공건물에 장애인 전용 구간이 없는 곳이 많다.
장애인의 생계 유지를 위한 직업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박창일 세계재활의학회 회장 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 이강우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장애인 테너 최승원 씨, 방송인 강원래 씨가 지난 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모여 `장애인을 끌어안기 위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 좌담회는 오는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계재활의학대회`를 기념해 하는 것으로 박 원장은 이 대회 대회장이다.
◆ 삶에 대한 의지가 장애 극복의 힘
▶박창일 원장=88년에 열린 장애인 올림픽 이후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이 많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장애인을 위한 재활의학에 대한 관심은 미흡하다.
▶강원래 씨=사고 직후 죽을 때까지 못 걷는다고 들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학창시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때문에 내가 장애인이 됐다는 말을 더욱 믿기 힘들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했다.
장애를 이겨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 병원을 찾는 장애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휠체어를 타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 나를 변화시켰다.
만약 교과서나 학교 수업에서 단 한번이라도 장애인에 대해 재활에 대해 언급해 줬더라면 긍정적인 사고를 갖기가 훨씬 쉬웠을거다.
▶이강우 교수=장애를 안고 있음에도 미국 뉴욕지방검찰청 검사로 활동하고 있어 세상을 놀라게 한 정범진 검사가 내 조카다.
정 검사가 법과대학 2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불구가 됐다.
처음에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했으나 결국 극복하고 보통 사람도 하기힘든 미 연방정부 검사가 됐다.
미국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보고 체계적인 과정에 놀랐다.
나중에는 정 검사가 오히려 부모님들을 위로하더라. 환자 스스로 변했다는 말이다.
◆ 장애 극복 위한 재활 혜택받는 사람 별로 없어
▶박 원장=누구나 장애를 안으면 거치는 과정이 있다.
처음엔 장애를 입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좌절한다.
이후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신체적ㆍ정신적인 회복을 돕는 재활과정이 시작된다.
강원래 씨의 치료과정을 지켜봤다.
아내 김송 씨의 눈물겨운 내조가 큰 힘이 됐다.
체계적인 재활치료도 강씨가 훌륭하게 장애를 극복하는 데 힘이 됐다.
▶최승원 씨=요즘 배드민턴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셔틀콕이 가는 것을 보기만 하다가 요새는 열심히 친다.
안 쓰는 근육을 계속 쓰다보면 통증도 없어지고 근육도 강해진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높은 계단이 있다.
이것을 108계단이라 불렀다.
올라가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힘이 들더라도 스스로 계단을 올라가려고 노력했다.
물론 무리가 따르기는 했지만 그때 그렇게 한 것이 오히려 운동 효과가 돼 근육이 많이 좋아졌다.
◆ 서울과 지방간 의료격차 큰 것도 문제
▶박 원장= 접근성도 큰 문제다.
제대로 된 재활병원이 별로 없다.
세브란스병원이 대학병원급으로는 유일하게 재활병원이 있다.
서울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힘들다.
의료 접근성이 확보되면 장애를 갖더라도 생산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사지가 마비되고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직장의 구성원으로 훌륭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도 하고 사업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재활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 교수=서울과 지방간 의료격차가 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방에 가면 재활 등 의료혜택을 전혀 못 받고 사는 사람이 많다.
국가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방에도 재활전문병원이 생겨나도록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 별 차이 없어
▶박 원장=질병에 따른 구분은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차이는 의미가 없다.
장애인과 휠체어를 타고 100m 달리기를 하면 내가 진다.
장애인이라고 떠받들 필요도 없고 무시할 것도 없다.
같은 동료고 사회 일원이다.
키가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듯 걷는 데 지장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운전도 하고 외국여행도 한다.
▶최씨=음악생활을 하면서 장애인 인식개선에 대한 이벤트를 많이 했다.
하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내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사회가 날 위해 무언가를 해 주기 이전에 나는 장애극복을 위해 스스로 무엇을 했는가. 장애인들도 사회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치료를 위해 스스로 뛰어다니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 원장=오는 6월에 서울에서 세계재활의학회 학술대회를 연다.
올해로 4회째다.
50개국에서 2500여 명의 재활의학 관련 의료인이 참여한다.
이 대회를 통해 재활의학과 장애인에 대한 국가와 국민 관심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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