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더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
“임신 4개월이시네요.”
며칠 전부터 울렁증이 생기고 전에 없이 이상야릇한 음식들이 먹고 싶더니만, 결혼 2년 만에 임신이 됐다. 사랑이란 것이, 결혼이라는 것이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내가 남들처럼 시끌벅적한 연애를 하고 남들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더니만, 이제는 남들처럼 엄마가 될 수 있단다.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까운 동네 산부인과를 다닐 것인가 종합병원을 다닐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던 끝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서 산부인과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받기 시작한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은 아기를 낳을 때까지 나를 쫓아 다녔고, 산부인과 특진교수는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임신에서 겪어야 하는 신체적인 어려움 외에 감당해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아 질줄 나는 미처 몰랐었다.
“조심하세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조심하세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환자를 안심시키고, 10달 동안 편안한 상태로 임신을 유지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의사는 산모인 나보다 더 불안해하며 나를 진료하곤 했다. 그녀의 눈에 나는 임산부이기 보다는 중증장애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외려, 내가 진료를 받을 때마다 의사에게 “괜찮아요. 괜찮아요”를 연발하며 그녀를 안심 시켜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면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꽃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무대에 올라가? 임산부가 웬 화장을?”
남편이 핀잔을 주곤 했지만 대기실에서 받게 될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보호막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그 시선이 두꺼운 파운데이션이나 빨간 립스틱으로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월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의 화장도 함께 두꺼워져 갔다.
임신 기간 내내 동물원에 원숭이가 되어 병원을 다녀야 했고 배가 불러오면서 차오르는 숨 막힘으로 잠들지도 못하고 앉아 있지도 못하는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던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특별한 임산부가 되어 방에서 꼼짝도 말고 누워만 있으라는 의사의 과잉 진료가 아니라 앉아서라도 할 수 있는 운동법이라든가 배가 불러오면서 겪어야 했던 호흡곤란 증세에 대한 대처 방안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길을 가다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우리는 불쌍해하지는 않는다. 혀를 차며 왜 무거운 짐을 지고 갈까 동정의 눈초리를 보내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함께 들어 주며 같이 걸어갈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쳐 버릴 것이다. 그때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만난 사람들과 의사들이 나를 그렇게만 생각해줬다면 내가 첫아이를 출산한 후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칼럼니스트 배은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