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라는 시련을 겪으면서 30년간 동양화를 그렸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뒤쳐지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답답합니다. 나와 다른 그림을 그리지만 같이 지내고 있는 조카와의 첫 개인전으로 제 그림인생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습니다.”(삼촌·한국화가 주현·48)
“예술이라 인정받지 못하는 그림을 10년간 그렸습니다. 바로 그래피티입니다. 많은 분들께 그래피티가 예술이라 인정받고 싶은건 욕심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써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삼촌과의 이번 전시로 인해 좀 더 그림을 즐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조카· 그래피티 작가 김서화·28)
3살때 열병을 앓은 후 청각장애 2급 장애인이 된 삼촌. 하지만 소리를 잃은 대신 예술적 재능을 얻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를 이끌어 준 건 다름아닌 한국화. 그는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한국화가로서의 길을 30여년간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다.
조카도 힘든 길을 걸어오기는 마찬가지. 국내 화단에서 그동안 어엿한 예술로서 대접받지 못해온 낯선 그래피티(벽같은 평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작가로 10여년간 활동하면서 마음고생도 심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한 길을 걷는 삼촌의 모습에서 그는 포기 대신 다시 붓을 들을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술속에서 희망을 찾은 후 꿋꿋하게 자신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삼촌과 조카가 의미있는 전시를 함께 마련한다. 20일(오픈 오후5시)부터 오는 24일까지 전북예술회관 전시실에서 한국화가인 주현씨와 조카인 그래피티 작가 김서화씨의 ‘삼촌과 조카전’이 열린다.
삼촌 주현씨는 “30년간 작품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그룹·단체전에 참여했지만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며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조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은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그림인생의 활력을 다시 찾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조카 김서화씨는 “국내에서 그래피티는 아직 생소한 미술장르이다. 상업성을 인정받아 여러 행사에서 인테리어 소재로 쓰이고 있지만 아직 예술성은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 관련 논문이 발표되는 등 재평가작업이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부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그래피티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 주제는 ‘엄마, 외할머니’. 이들이 ‘삼촌의 엄마=조카의 외할머니’라는 공통된 화두를 갖고 만든 한국화와 다소 생소한 미술장르인 그래피티 작품이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두 작가의 각별한 개인사연 못지않게 오랜 전통의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인 낙서예술간의 만남이 이뤄지는 이번 전시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색다른 느낌을 전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이들은 “이번 전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와 그동안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림을 그려온 이가 함께 꾸미는 자리이다”며 “어느 누구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온 저희들의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의 가슴속에 작게나마 다시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출처 : 노컷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