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제37회 회장배 전국남녀 빙상경기대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3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남자 고등부 3,000m 경기를 마친 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코치와 정겹게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큰 키의 선수가 눈에 띄었다. 푸른색 유니폼 가슴에 선명한 태극마크. 한 눈에 봐도 국가대표임이 분명하다. 전광판에는 '고병욱'이란 이름 석 자와 함께 4분05초53의 기록이 함께 떠올랐다.
어딘지 낯익은 이름. 지난해 2월 동계체전에서 심각한 청각장애를 딛고 남중부 5,000m에서 대회신기록으로 우승하면서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찍었던 바로 그 고병욱(17.불암고)이었다.
특수보청기 없이는 굴착기 작업이나 잔디 깎는 기계음 등 90㏈ 정도의 소리도 듣기 어려운 청각장애 2급 장애인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2007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해 '소리없는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가 태극마크의 기회를 얻은 것은 지난해 12월 21일 끝난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였다. 동계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을 겸했던 대회 남자 5,000m에 출전해 3위를 차지해 당당히 국가대표로 뽑혔다. 청각장애를 가진 선수가 대표팀에 뽑혔던 것은 90년대 여자 스피드스케이트를 이끌었던 유선희(41) 이후 두 번째다.
이로써 고병욱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당당히 청각장애를 딛고 태극마크를 달면서 장애우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게 됐다.
생후 23개월 때 청각장애 사실을 발견한 고병욱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뒤 4학년 때부터 김병기(39) 코치와 인연을 맺고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빠른 스타트가 필요한 단거리 대신 장거리 종목을 파고든 고병욱은 그동안 대표팀 상비군에도 몇 차례 뽑혔지만 장애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워 상비군 자격을 포기한 채 김 코치와 훈련에 전념해 왔다.
지난 2005년 전국남녀 빙상경기대회 중등부 3,000m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운 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남중부 5,000m 신기록을 세우면서 고속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고병욱은 마침내 대표선수로 발탁되면서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을 통해 생애 첫 국제대회 출전의 꿈을 펼치게 됐다.
김 코치는 "국가대표로 뽑힌 뒤 (고)병욱이가 많이 흥분돼 있다. 평소답지 않게 오버페이스를 할 정도로 기분이 '업(up)'돼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지난달 말에 대표선수로 확정된 뒤 출전한 한일 친선교류전에서도 체력이 떨어져 있는 가운데 '일본 선수들에게 얕보일 수 없다'며 전력질주를 했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 선수"라며 "순수하면서도 의지가 강하다"고 칭찬했다.
김 코치가 꼽은 그의 장점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두 달 동안 5,000m를 일곱 번 뛰고 1만m도 두번 이나 출전했을 정도로 지구력 만큼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동계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둔 고병욱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힌 것은 중간 과정일 뿐"이라며 "세계 최고가 되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당찬 목표를 밝혔다.
(끝)
출처 :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