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새아침 희망 릴레이] ① 첫전파 쏘는 ‘희망노트’
“차량 LPG 지원중단은 굶주린 이 밥 뺏는 일”
화장실 문제 나오자 “잘 쌀 권리도 없나요”
‘♬ 해피 뉴 이어~때로는 모든 이웃이 친구인 그런 세상을 꿈꿔도 되지 않을까요 ♬’
팝그룹 아바의 <해피 뉴 이어>가 경쾌하게 흐른다. 이어 진행자 김시경(34·소아마비 1급)씨의 첫 멘트가 차분하고 깨끗한 목소리에 실려 전파를 탄다.
“장애인 방송 ‘함께 쓰는 희망노트’입니다. 여러분은 새해 어떤 복을 기원하셨나요? 저는 오늘 첫 방송으로 출발하는 저희 ‘함께 쓰는 희망노트’가 올 한해 청취자 여러분과 많은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고 기원했습니다.”
장애인이 기획·제작하는 방송프로그램 ‘함께 쓰는 희망노트’가 1일 오후 2시 첫 라디오 전파를 쏜다. 서울 마포·서대문 지역에서 수신되는 소출력 지역 방송국인 <마포에프엠>을 통해서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한시간씩 청취자를 찾아간다.
장애인들로 구성된 ‘함께 쓰는 희망노트’ 제작진 15명은 지난해 12월2일부터 24일까지 일주일에 한 두차례 마포에프엠 사람들한테서 방송기자재 다루는 법을 교육받았다. 교육이 잦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여야 하는 터라 매번 모이는 과정이 힘들었다. 차가 없는 이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장애인용 승강기를 찾아 역사를 한바퀴 빙 돌아야 했다. 장애가 심한 경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애초에 이동이 불가능하다. 또 의사 전달이 어려운 뇌성마비 장애인이 방송에 출연하려면, 진행자가 미리 장애 유형을 설명한 뒤 출연자의 말 끝에 ‘이러이러한 취지의 말을 했다’고 따로 설명을 붙여줘야 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장애인이 직접 만드는 장애인 방송을 시도하자고 처음 제안한 이는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동휘 소장이었다. 한국장애인총연맹의 방송아카데미 출신인 김 소장은 장애인들이 방송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국방송> 제3라디오 등 장애인을 위한 방송이 있지만, 정작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잠깐 리포터로나 출연하는 정도다. 또 눈높이가 비장애인에 맞춰져, 장애인이 듣기엔 짜증이 날 때가 많다.
“비장애인이 만드는 방송은 ‘장애 극복’이라는 틀에 맞춰 있어요. 왜 극복해야 하죠? 단지 다를 뿐인데. 예를 들면, 장애인이 아이를 낳았다, 그 다음 멘트는 ‘아이는 건강합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단합니다’, 이런 식이죠.”
월요일치 방송의 구성작가 겸 피디인 차미경(37·지체장애 2급)씨도 “기존 장애인 방송은 장애인을 시혜 대상적인 존재로만 그려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함께 쓰는 희망노트’에서는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 첫 방송을 미리 들어보면, ‘2006년 장애계의 나쁜 뉴스’가 나온다. 이 가운데 장애인차량 액화석유가스(엘피지) 지원 중단 문제가 나오자, 차씨는 “여러날 굶은 뒤 먹고 있는 사람의 밥을 뺏는 것과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진행자 김씨도 ‘새해 장애계의 키워드’로 장애인 화장실 문제가 나오자 “아직도 키워드에 장애인 화장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에게 잘 먹을 권리뿐 아니라 잘 쌀 권리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방송을 딱딱하게 끌고갈 생각은 없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달콤쌉싸름한 이야기를 발랄하게 풀어갈 생각이다. 월요일치 코너인 ‘그녀들의 수다’가 대표적이다. ‘여성 장애인과 결혼한 비장애인 남성이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는 식의 편견에 대해 수다로 문제제기를 할 참이란다. 뇌성마비 2급 장애인 신선해(26)씨가 대본을 쓰는 ‘두리의 일기’는 신씨가 생활하면서 직접 겪은 일이나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독백으로 표현한다.
총감독을 맡은 박태영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이번 방송을 만든 데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며 “집에만 있어야 하는 장애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새해 얼마나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 궁금한 사람은 월·수요일 오후 마포·서대문 지역을 지날 때 에프엠 100.7㎒로 채널을 맞추거나, <마포에프엠> 누리집(www.mapofm.net)을 찾아보길 권한다.
출처 :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