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장애인을 키운 대부분의 부모가 그러하듯, 저 역시 몸과 마음이 지쳤고 또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희망은 안 보이고, 살림살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아이는 점점 부모의 손에서 멀어져 갑니다.”
25살 먹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키우는 한 어머니의 애절한 하소연이 담긴 편지에서 인용한 말이다. 장애인들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장기간에 걸쳐 사회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물론 지역의 복지관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종사자들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그나마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재활 작업’이라고 해도 휴지 접기, 볼펜 심 넣기, 쇼핑백 만들기 등 단순 작업인 경우가 태반이다. 정부와 사회가 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일찍이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박물관의 문턱을 낮추고 장애인들을 위한 너른 마당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4년 시각장애인들이 전시물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손으로 느끼는 민속교실’ 교육을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박물관 가운데 처음으로 ‘어린이박물관 점자 브로슈어’까지 제작하여 제공하고 있다.
요즘에는 정신지체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우리 둘이 박물관 나들이’ 교육이나 정신지체 발달장애 청각장애 성인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현장민속교실’ 교육도 운영하고 있다. 전자는 장애어린이들이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찾아와서 월 1회 전통문화 체험교육을 받는 것이고, 후자는 성인장애인을 대상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 복지관으로 강사진을 파견해 한지공예, 풍물, 택견 등을 가르치는 전통문화교육 장기 프로그램이다.
특히 인기가 있는 것이 한지공예 프로그램이다. 한지의 예쁜 빛깔을 눈으로 보고 그 부드러움을 손으로 느끼면서 정서적 안정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 손가락을 정교하게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소근육 발달과 집중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요즘 문화관광부가 ‘한(韓) 브랜드’ 사업을 벌이면서 한지의 활용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지에 이러한 효용이 있음을 자랑하고 싶다.
더욱 뜻 있는 것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운영하는 각종 교육프로그램 수강생들의 작품을 모아 약 한 달간 전시회를 열어준 ‘우리솜씨전’(10월3일∼11월13일)이었다. 여기에 장애인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것은 물론이다. 자신들의 작품이 비장애인과 어깨를 나란히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장애인들이 자신감과 성취감 그리고 재활의지를 북돋울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다시, 앞서 인용한 어머니의 말이다. “장애인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한 사람을 세우는 길이고, 많은 가정을 살리는 길입니다. 바라건대, 내민 손 일찍 거두지 마시고,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길게 유지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오래오래 인내하고 끈기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인 교육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공무원으로서 어떻게 이런 호소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부족한 예산이지만 아끼고 또 아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많은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하고 또 한다.
정현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출처 : 세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