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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진보개혁의 위기] 인권개선 기대한 이주노동자·장애인 ‘절망’2006-12-08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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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성람재단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 회원들은 광화문에서 시작한 2박3일의 삼보일배를 마치고 여의도에 도착했다. 이들은 장애인 인권을 유린한 성람재단에 대한 특별감사와 ‘공익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촉구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는 “정부의 침묵 속에 10년 동안 반복된 장애인시설 인권유린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1주일 뒤인 12월6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회원 1,000여명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 모여 ‘실효성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주장했다. 이들은 “재계가 기업부담을 이유로 장애인차별 금지법을 반대하고 있고 정부도 부화뇌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애인들의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장애인교육지원법,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각장애인안마사 생존권 확보 등 이슈도 다양하다. 이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는 그들의 삶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내년 3월 이후 대선정국에 들어가면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생각도 하는 듯하다.

서울 장애인부모회 회장 김경애씨는 마음이 급하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올해 안에 통과되지 않으면 5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서다. 그때쯤이면 둘째아들 현종군(12)은 학교를 졸업할 나이다. 현종이는 일반 초등학교에 다닌다. 물론 특수학급이다. 문제는 현종이를 위한 교육이 없다는 점이다. 특수학급에는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도 있다. 그러고 보면 현종이는 수업의 들러리일 뿐이다. 수련회에 갈 때면 학교에서는 어머니 김씨에게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한다. 개선책을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김경애씨는 올해 거리투쟁에 나섰다.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2006년 현재 일반학교에 설치된 특수학급은 3,645개다. 중학교에는 986개, 고등학교에는 422개가 있다. 고등학교는 초등학교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 장애인 학생수는 초등학생이 2만1천7백명, 중학생 6,598명, 고등학생 3,670명이다. 장애인에게는 중·고교 진학도 ‘전쟁’이다. 김씨는 “2003년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자는 5만8천명 정도이지만 실제 장애인 학생은 25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장애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급 시각장애인 강윤택씨(28)는 지난 10월 서울시 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했지만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점자 시험지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시험 도중 퇴실도 허락하지 않았다. 100분간 우두커니 앉아서 시험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강씨의 지원 분야는 사회복지직. 장애인끼리 경쟁하는 자리였다. 장애인 의무고용정책만 믿고 수년을 공부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런 ‘절망’이었다. 강씨는 공주대 사범대에서 특수교육과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현재 직업훈련교사로 일하고 있다. 관련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강씨는 자신이 충분히 공무원으로서 일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능력을 평가받을 기회조차 봉쇄돼 있다. 원서 접수 때 서울시 인사과 관계자는 “시각·청각 능력이 없는 장애인은 행정능력이 없어 시험을 볼 수 없다”고 일방 통보했다.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어떤 배려도 없었다. 강씨는 “시험날 감독관이 와서 ‘안된다고 했는데 왜 고집을 부리느냐’며 비아냥거렸다”고 폭로했다.

지난 9월 9개 부처는 장애인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획기적’이라고 자평했다. 이를 위해 1조5천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내년부터 장애수당 지급 대상을 기초생활수급권자에서 차상위계층으로 확대하고 지급 금액도 2배가량 늘릴 방침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 활동보조인서비스, 장애인교육지원법, 사회복지사업법 재개정을 바라고 있다. 이 네가지 법안 모두 지지부진한 상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박옥순 사무국장은 “재계의 전면적인 압박에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사회복지사업법 재개정과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도 마찬가지. 정부안을 만들겠다고 한 지 몇달이 지났지만 진척은 없다. 활동보조인 서비스 역시 정부가 ‘시늉’만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증장애인 한명당 월 40시간의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하루 2시간도 안된다. 장애인들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인 것을 정부는 모른 체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2백14만명이다. 100명 가운데 4명꼴로 장애인인 셈이다. 하지만 길거리에서는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을 좀체로 찾아보기 힘들다.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올 수 없는 환경 때문이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사회가 되려면 우선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어야 한다. 편의시설이 없으면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고, 이는 장애인들의 생존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각종 시설의 장애인용 통로 개설, 지하철 역의 스크린도어, 대중교통 수단의 장애인용 출입장치 마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관공서 건물조차도 장애인용 편의시설은 태부족하다. 장애인 의무고용 역시 제대로 지키는 관공서가 드물다. 민간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은 관공서보다 훨씬 떨어진다.

이러니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낮을 수밖에 없다. 도시 근로자 가구소득 3백1만9천원의 절반에 불과한 1백57만2천원이다. 또 전체 장애인가구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가구는 13.1%다. 비장애인 가구의 6.82%에 비해 두배다. 낮은 소득은 장애인들의 활동공간을 위축시키고, 그것이 다시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돈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것이다. 시설인권연대 소속 김정하씨는 최우선적 고려요소로 사회복지사업법 재개정과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강조한다. 김씨는 “몇달 후에 정부안이 나오더라도 기존 발의안과 병합 논의를 하면서 다시 몇개월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도현 국장은 “정부나 정치권이 선심 쓰듯 정책을 발표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장애인 문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생존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박옥순 국장은 “진보세력들의 요구 사항에서조차 장애인문제는 항상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