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문화가 선풍을 끌고 있다. 이런 웰빙 욕구가 장애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의 질은커녕 이동 교육 취업 등 최소한의 권리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차별의 감도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은 굳이 인권 선언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느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충족되어야 할 권리라 생각한다. 과거 장애인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이 소수 장애인의 개인적 ‘인간승리’나 가족애(家族愛)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영화 ‘대륙횡단’은 장애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일상의 권리 찾기’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이다.
대륙횡단
‘대륙횡단’은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든 <여섯개의 시선> 중 한 영화로, 선 굵은 목판화처럼 장애인의 현실을 투박하게 각인시킨다. 여균동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연습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수많은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엽편(葉片·콩트)으로 구성했다”면서 “이 땅의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이란 것이 한 부분으로 국한시키기에는 미흡하고 총체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대륙횡단’에 출연하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제 장애인이고, 특히 주인공 김문주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 실명 그대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김문주 혹은 김문주의 친구들이거나 김문주와 같은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상황과 감정들을 ‘18년만의 외출’, ‘약혼식’, ‘음악 감상 시간’, ‘횡재’, ‘내가 본 것’, ‘예행연습’, ‘셀프 카메라’ ‘대륙횡단’ 등의 소제목을 달아 13편의 에피소드로 연결해냈다.
힘들게 외출을 하려고 목발을 짚고 나와 현관문을 잠그려다 열쇠를 떨어뜨린 순간, 이웃집 아주머니가 달려와 “어머, 힘든데 어디 갔다 오는 모양이로구나? 문주야 내가 도와줄게. 교회에도 꼭 나오렴!”이라며 집 안으로 도로 밀어 넣는 모습(18년만의 외출), 친지의 약혼식 날 온 가족이 부산을 떨며 외출 준비를 할 때 어머니가 문주에게 “밥이나 잘 먹고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약혼식)은 장애인이 주위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고립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특히 지하철 출입 계단에서 ‘소녀의 기도’ 음악 소리에 맞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장애인 모습과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승객의 모습을 대비시켜 이를 한마디 대사 없이 처리한 것(음악 감상 시간)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소리 없이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 장애인 이동권 투쟁 시위로 잡혀간 친구를 생각하며 홀로 주인공이 집 앞 도로에서 목발을 짚고 차도를 왕복으로 건너는 장면(예행 연습), 셀프 카메라로 자신의 발을 찍으며 “이 못생긴 발은 나에게 고통을 주지만 이 발로 그 곳을 건너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셀프 카메라)은 자신의 불편한 처지를 인정하고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주인공의 의지를 드러내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이어 광화문 네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대각선으로 건너갈 때 그를 둘러싼 자동차와 사람들의 풍경을 부감(俯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찍은 영화촬영기법)으로 잡아낸 장면(대륙횡단)은 앞의 모든 상황들을 아우르며 사방이 막혀 있는 장애인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위험을 무릅쓴 ‘이동’을 통해 일인 시위를 하며 “나 갈래!”, “나 갈거야!”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경찰의 호각 소리에 묻히는 마지막 장면은 장애인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이 감옥살이나 매한가지라는 어느 장애인의 말을 실감케 한다.
살펴볼 용어: 이동권
이동권이란 일반적으로 접근권(rights to access)과 함께 쓰이거나 접근권의 하위 권리로 이해된다. 접근권이란 장애인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기회의 균등과 적극적 사회 참여를 목적으로 교육 노동 문화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근본적 권리를 의미한다. 이동권은 곧 참여권을 의미하며 참여권의 부재는 사회적 차별로 이어진다 따라서 장애인 이동권이란 단지 교통시설에서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권리로까지 이해해야 할 것이다. 200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450만 명 장애인 중 70.5%가 한 달에 5번도 외출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바로 이동의 불편 때문이다. 장애인이 교육, 직업, 문화생활 등에서 소외되지 않고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이동권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함께 나눌 이야기
1. 장애인 이동권이 현재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장애인을 보는 시선 혹은 장애인 자신이 느끼는 차별이 예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희윤 영화교육가·성공회대 강사·‘이 영화 함께 볼래’ 저자)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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