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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잠시 눈 감고 5m만 걸어 보시죠2006-10-30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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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편견으로 방치되는 공공장소 편의시설...점자블록은 장애인에게 생명길

지난 9월 14부터 16일까지 2박3일간 속리산에서는 '2006 전국시민운동가 대회'가 열렸습니다. 본의 아니게 대회 기록역할을 맡게되었습니다. 3일 내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대회프로그램과 참석한 시민운동가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이를 실시간으로 블로그와 대회 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대회에 참여치 못한 전국의 시민운동가들과 일반시민들에게 대회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줘야겠다는 개인적인 바람과 욕심이 생기더군요.

아무튼 대회 마지막날, 폐회식이 끝나고 다른 스텝들과 이것저것 행사뒷정리를 끝내고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다른 짐 정리도 같이 해야할 듯 하여 재빨리 식당으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는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애인 활동가로부터 받은 뜻밖의 제안

한 테이블에서 마주앉아 점심을 함께 한 장애인활동가(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였습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활동가는 제가 대회기간 동안 부산하게 움직이며 사진을 찍고 하는 모습을 눈여겨봤는지 "고생하셨네요"라며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주었습니다.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얼마 전 단체활동을 접고 쉬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뜻밖의 갑작스런 제안에 무작정 답을 하긴 어려웠습니다. 물론 장애인 인권과 차별문제에 대한 관심은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되돌아보지 못한 내 문제를 풀 시간이 필요했고, 단체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운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도 큽니다.

그렇다고 어렵게 제안을 한 활동가에게 "안 된다"란 말을 할 수 없어, 그 짧은 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역시 블로그와 같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에 대해 공부를 한 후 나름의 활동을 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장애인 관련 단체를 방문해 활동가 인터뷰 등을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보겠다는 것도 밝혔습니다.

시민운동가대회에서 돌아와 장애인활동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자료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나온 <왜, 맨날 반말이야!>,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의 <편의시설 만화로 보기>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만성화 돼 있는 장애인 차별과 편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들을 읽고 난 뒤 거리, 지하철역 공공건물의 편의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휠체어 리프트,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점자표시, 비상 경고등, 경사로 등등.

편견으로 방치된 편의시설

하지만 우리 모두의 편리와 안전을 위해 설치된 편의시설물들은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아이에게 꼭 필요한 장소에 아예 없거나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특히,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생명길인 노란 점자(유도)블록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발바닥이나 보행보조기구인 흰 지팡이 끝으로 지면의 변화와 장애물에 대한 정보를 감지해 걷는데, 이를 돕고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이 바로 점자블록입니다. 점자유도블럭은 눈에 잘 띄는 노란색이 많은데, 그 이유는 색을 변별하는 시각장애인에게도 좋고 일반인들에게도, 이게 유도블럭이란걸 알게 해서 서로 통행에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블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편의시설만화로보기>란 책의 삽화 중에는 점자블럭을 발바닥 지압계로 오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하철역내 임대시설이나 지하상가에서는 점자블럭을 이용해 통행하는 시각장애인을 가로막는 상업 시설이 많습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것이지만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편의시설을 가로막아 선 것은 옳지 못합니다. 특히 넘지 말아야 할 선(청테이프)을 표시해 놓았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물건을 통로쪽으로 내놓은 곳은 시각장애인들의 통행에 반드시 장애가 됩니다.

한 지하철역에서는 아예 임대시설 공사를 위해 점자블럭 위에 통행을 가로막는 표식을 올려놓거나, 임대시설을 점자블록 가까이에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큼지막하게 세워놓은 '공사중'이란 표시를 보고 잘 피해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 달 정도 지하철역이나 거리의 편의시설물을 눈여겨보며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많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무조건적인 동정과 배려의 대상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장애인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독립적으로, 자율적으로, 인간답게 살아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편의시설조차 제대로 구비해 놓지 않고 있습니다. 또 정치인들은 장애인들의 독립생활을 위한 활동보조인 서비스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적인 차별과 편견에 빠져있는 분들께 한가지 권하고 싶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잠시 눈을 감고 5m정도만 걸어 보시라고요. 점자블럭도 없이 흰 지팡이 없이 그 짧은 거리를 걸어가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장애인들과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얼마나 세상살기가 어려운지 각성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맹목적이고 일상적인 차별과 편견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답게 더불어 살아가는 그 날을 꿈꿔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