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와 보낸 하루 ③] 뇌성마비 2급 장애인 기자 박준규
시민기자 박준규. 그는 뇌성마비 2급 장애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장애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일상을 따뜻한 기사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사실, 그를 만나기 며칠 전 전화를 걸었을 때 신호음이 가는 동안 내심 걱정이 앞섰다. 고향 옆집에 뇌성마비 1급 친구가 있어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 친구와는 달리 손전화를 갖고 다니는 걸 보면 그래도 대화는 통하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전화 받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적잖이 당황했다. 또렷하게 "여보세요"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어눌한 말투만 아니라면 전화 목소리만으론 그를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보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직장 잃고 한동안 무기력
6일(일요일) 그를 만나기 위해 인천에서 하루 전날 출발해 춘천에서 1박을 했다. 가평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는 그날 춘천에 있는 '무지개동산'이라는 독거노인 보호시설에 자원봉사하러 간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도 불편할 터인데 어떻게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무지개동산'은 춘천 옥광산 언덕배기에 있다. 위치를 정확히 몰라 접어든 길에서 박준규 시민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내 차 뒤에 바짝 따라오는 차 안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박준규씨, 혹시 흰색 000 아니세요?"
"네, 맞는데요."
"바로 앞에 000 보이시죠? 접니다. 제가 바로 찾아왔네요."
몸이 불편해서 그리고 그가 남들보다 어렵게 살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자원봉사회원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올 것이라는 예상은 그대로 빗나갔다. 차를 주차한 그가 차 문을 열고 걸어오는 동안 보여준 서툰 걸음걸이는 한눈에 보아도 장애인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곱상한 얼굴, 티 없이 웃어주는 그의 모습이 무척 환했다.
그는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좁다란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한동안 밑에서 지켜봤다. 난간을 잡고 힘겹게 걸음을 떼는 그를 보면서 내가 너무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봉사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시민기자가 되려고 했던 이유를 묻자 그는 "내가 장애를 갖고 있어서겠지만 소외되고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격 없이 동등하게 함께 살아가길 바랐다"고 털어놓았다.
본인도 장애를 가지고 있어 힘들 것으로 보인다는 말에 그는 "내가 직장을 다닐 때는 몰랐다, 생활이 힘들다 보니 먹고 사는 것에만 신경이 갔다"면서 "직장을 잃고 한 동안 무기력하게 보내다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지역 신문에 글을 기고한 것이 내 삶에 변화를 주었다"고 말했다.
"나보다 더 소외되고 불편한 사람들 많아"
이어 "내가 장애라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했다"며 운을 뗀 그는 "불편한 몸으로 취재를 다니다가 나보다 더 소외되고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전에 몰랐던 보람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한없이 행복하기만 하다"며 "회원들간 교대로 한 달에 한 번 이곳에 봉사를 오는데, 주중에 들르는 곳이 한 곳 더 있다"고 귀띔했다.
기사 쓰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몸과 손이 불편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 기사는 길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어 "보통 한 꼭지 올리는데 반나절은 기본이고 어쩔 땐 하루가 부족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재차 질문했다. '본인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불편한 몸인데 혼자 사는 것에 어려움은 없나'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나' '가족이 있다면 왜 혼자서 힘들게 살아가는가'. 그런데 질문을 해놓고 나니 괜한 질문이 아닌지 괜히 미안해진다. 그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눈치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내심 결심이라도 한 듯 이내 웃음 한 번 웃어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아버지 그리고 형 내외와 조카가 있다, 형님은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생활한다, 형 내외는 가끔씩 주말이면 내려온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자동차는 형이 마련해 준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못난 동생을 끔찍이 생각해줘 고맙기만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아버지 얼굴을 거의 모르고 자랐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뒤, 형이 내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본인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기자를 배려한 듯했다. 하지만 나는 순간 울컥하는 것을 힘들게 참아야만 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세상 살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지금 내게는 이렇듯 서로 사랑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할 수 있는 만큼 소외된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게 꿈이란다.
하루 동안 보살피는 어르신 15명 남짓
자원봉사회원들이 도착하자 더 이상 대화는 할 수 없었다. 대신 그가 봉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어르신들이 있는 1층과는 달리 2층에는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중증 노인들이 있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일어날 수조차 없는 어르신들이다.
의료용 간이침대가 방 두 곳에 나누어져 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따로 생활했다. 봉사자들이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환자를 씻기는 것. 두 사람이 어르신 한 분을 욕실로 옮기는 동안 박준규 기자는 공간 내부를 정리했다.
이불과 침대 커버, 베개 커버를 벗겨 세탁기에 넣고 다시 깔 수 있는 새것을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 사람씩 찾아가 틈나는 대로 말벗을 하는 게 친할아버지 할머니 대하듯 편안하다. 옆에서 지켜보는 기자도 기분이 좋아 미소 짓게 된다. 그렇게 하루 동안 보살피는 어르신은 15분 남짓이다.
어느덧 점심시간인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가 점심을 함께 하자고 말한다. 회원들이 닭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약속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말하자 내심 섭섭해 하는 눈치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더하고 다음에 또 보자고 약속했다.
먼저 그가 쓴 기사 중 콜라에 관한 글(<나만의 '웰빙 콜라' 비법을 공개합니다>)을 언급하면서 혼자 어렵게 살아서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것 아니었냐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살고 있는 집과 자동차가 내 앞으로 명의가 되어 있다, 그래서 관에서는 생활보조금 지급이 되지 않는다"고 멋쩍게 웃은 뒤 "형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여유가 있어도 아끼게 된다, 사실 콜라를 무척 좋아하는데 매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름 연구한 결과다"라며 무척 쑥스러워했다.
만약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마지막으로 좀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본인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지금 현재 이곳에 있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솔직히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정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만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은 이렇지 않은가. 각자의 삶이 다르듯 내 몫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남들처럼 잘 걷지도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다. 말도 느릿하고 간혹 어려운 단어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그는 시민기자다. 빼어난 글 솜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꾸밈없이 솔직하고 담백하다. 때로는 그의 엉뚱한 상상력이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그의 기사를 보면 그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배려와 사랑이 있고 따뜻한 정이 넘친다.
만나는 동안 사람에 대한 그의 따뜻한 배려를 느꼈다. 어쩌면 그가 장애인이 아니라도 지금처럼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건강한 신체로 남들보다 더 열성이지 않았을까.
출처 : 오마이뉴스 박병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