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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사람을 중요시하는 사회, 멀었나요?"200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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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상대로 민사소송 중인 강지훈씨
사람 가치 경시하는 사회 바꾸는 작업중

“사고가 났을 당시에는 교수 자리를 주겠다, 치료는 걱정 말라고 하던 학교 측이 세상의 관심이 없어지니까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하면서 청구를 하겠다고 합니다. 사람의 가치를 너무 경시하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가스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학교측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이고 있는 강지훈(30·지체장애1급)씨의 하소연이다. 강씨는 “치료비도 못 주겠다는 것은 정말 너무한 것이 아니냐”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강씨는 “병원에서 치료 중일 때도 합의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비 지급을 중단하는 사건도 있었다”면서 “나라를 위해서 첨단로봇 연구에 내 자신을 바쳤었는데, 지금 이러한 취급을 받으니 속된 말로 나만 바보가 된 것 같다”고 억울해했다.

안전대책 없는 실험환경이 빚은 사고

사고는 강씨가 박사과정 4년 차였던 2003년 5월 13일 KAIST 풍동실험실에서 일어났다. 강씨가 질소 가스를 찾던 중 길목을 막고 있던 50리터들이 회색가스 용기를 옆으로 치워놓으려고 드는 순간 폭발한 것.

가스 용기는 내용물의 종류와 안전성에 따라 색깔을 달리한다. 회색은 안전한 질소나 헬륨, 주황은 가연성 위험 가스, 녹색은 압축 공기를 의미한다. 문제가 된 회색 용기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고 연결된 튜브가 다른 실험장치와 연결되지 않아 강씨는 안전한 가스라고 판단했으나 드는 순간 폭발했다.

회색가스 용기를 채우고 있던 것은 폭발력이 큰 수소와 공기의 혼합 기체였던 것이다. 밸브에도 결함이 있어 가만히 두어도 언젠가는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결과이다.

당시 같이 실험을 했던 동료 1명을 목숨을 잃었고, 강씨는 한쪽 다리의 무릎 위와 다른 쪽 다리 무릎 아래가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었다. 사고가 나기 전 2002년 최우수 학생으로 뽑혀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6개월 간 방문연구원으로 수학할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과학도였다.

“당장 주변에 있는 대학 연구실을 한번 가보세요. 복도에 위험한 약품들, 실험기구들이 널려 있어요. 수많은 학생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예산이 없다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어요. 그들에겐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한 것이죠.”

강씨는 “대학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오려고 장학금 등을 주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전한 실험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인재들을 모으는 방법입니다. 누가 위험한 환경에서 연구를 하고,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연구실 안전법’ 제정은 이끌어냈지만…

강씨는 사고 이후 KAIST대학원 총학생회와 함께 실험실 안전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는 활동을 펼쳤다. 결국 지난해 3월 31일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내 얼마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강씨는 지난 4월 20일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가 주는 장애극복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측은 당시 사고를 쌍방과실로 몰고 가면서 보상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 두 번의 공판이 있었는데 결국 조정에 실패, 정식 재판(1심)을 앞두고 있다. 강씨는 조정과정에서 드러난 법원측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법원이 의사를 지정해서 나에게 특수의족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법원과 학교측이 의족이 고가이고 아직까지 이런 의족을 인정한 판례가 없다는 이유로 의족에 대한 손해배상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 법원 기준으로 하면 일반 의족도 쓰지 못할 판이다. 장애인 보장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이번 소송으로 장애인 보장구에 대한 인식을 바꿔내고 싶다.”

강씨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 보장구에 대한 사회 인식의 부재뿐만이 아니다. 강씨는 사고 후 1년 동안을 병원에서 지냈다. 치료를 받고, 재활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강씨는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의 문제점도 직접 몸소 체험했다.

“일단 병상이 매우 부족해요. 대기자가 너무 많다보니 3개월마다 한번씩 병원을 옮겨야 해요. 아무래도 병원 입장에서 수지가 맞지 않아 재활 환자를 꺼려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주 바뀌고 주변이 어수선하다보니 심리적으로도 좋지 않아요. 재활 과정에서는 심리적인 측면도 매우 중요한데 말이에요.”

이는 바로 강씨가 지난 7일 민간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푸르메재단측에 장애극복상 상금 1천만원을 전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강씨는 “민간재활병원을 짓는데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탤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재단측은 강씨의 뜻을 기려 ‘강지훈 기금’을 만들고, 강씨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기금 조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강씨는 올해부터 딜로이트 컨설팅에서 IT분야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결국 과학도의 꿈은 접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씨는 새 꿈을 꾸고 있다.

“장애인 정책을 개선하는 데 내가 쓰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해 장애청년드림팀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영국과 프랑스의 선진적인 환경을 보고 왔는데 기술적인 진보만이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경제도 많이 알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컨설턴트 일도 시작한 것이다. 많이 배우고 있다.”

출처 : 에이블뉴스<소장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