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저소득층 단전가구 지원책 '무용지물'
지난해 7월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자던 중학생이 화재로 숨지는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다양한 단전가구 지원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소전류제한기와 혹한기 단전 유예 등의 정부 지원책이 결국은 단전조치 못지 않게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신마비 장애인 최모씨는 3개월 이상 전기료를 체납해 집에 전기가 끊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전이 소전류제한기를 달아주긴 했지만 최씨는 자신의 발과 같은 ‘전동휠체어’를 충전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최씨는 현재 아예 외출을 포기하고 집에서만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최씨는 "전동휠체어 충전도 못시키고 냉장고도 안 돌아가고... 돈 없는 시민이나 장애인들은 목숨을 끊으라는 것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노원구 월계동에서 모자가정을 꾸리고 있는 김모 여인은 전기료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겼기자 소전류제한기를 사용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아이들의 실수로 자주 소전류제한기의 작동이 멈춰 형광등도 켜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자연히 김씨는 아이들에게 매질을 하는 일이 늘게 됐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현재 단전가정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2가지다. 전기를 아예 쓰지 않거나 소전류제한기를 설치해 극소량의 전기라도 공급받는 것이다.
하지만 소전류제한기로는 최씨처럼 전통휠체어는 물론 컴퓨터와 세탁기, 그리고 전기밥솥 등 필수 가전제품을 전혀 사용할 수 없어 많은 단전가정이 아예 전기사용을 포기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일 부산의 한 단전가정에서 9살짜리 어린이가 촛불을 켰다 화재가 발생한 사건의 경우도 이 가정에는 소전류제한기 부착돼 있었다.
소전류제한기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소전류제한기 등 정부의 정책이 결국 빈곤층의 에너지기본권을 전혀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최인욱 국장은 "소전류제한기라는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또하나의 압박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이 것 가지고 저소득층의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 뭔가 대책을 세운 것처럼 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한 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최 극빈층인 단전가구를 돕겠다고 만든 정부대책이 오히려 이들을 더욱 서럽게 만들고 있다.
"돈 없는 시민이나 장애인 목숨 끊으라는거냐"
정부대책이 이들을 더욱 서럽게 만들어
이같이 단전으로 인한 각종인권침해가 빈발하고 있어 국가인권위가 실태분석을 위한 용역연구를 의뢰한 결과 대부분의 단전가구는 가족이 해체되거나 전형적인 극빈계층인 것으로 드러났다.
빈곤문제연구소가 인권위의 의뢰를 받아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한 단전, 단수 가구수는 모두 814가구.
하지만 실제 연락이 닫은 가구수는 전체의 15%인 122개에 불과하다.
빈곤문제연구소는 나머지 85%의 가정은 단전, 단수 등 극심한 빈곤생활을 이기지 못해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가족이 해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그럼 나머지 85%의 가구는 누구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찾아 냈을때는 너무 늦어서 이미 가족해체 상태로 가고 주거지에서 퇴출된 상태로 가는 거다"고 말했다.
또, 단전 가구주의 직업을 살펴보면 무직이 48.4%로 반 정도를 차지했고, 일용직이 29.5%를 차지했다.
특히 무직 단전가구 가운데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모자가구가 70%를 차지해 단전단수가 전형적인 빈곤층의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단전 대책은 혹한기와 혹서기에 단전을 유예해주고 그 외의 기간에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소전류제한기를 부착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류소장은 "우리나라는 전기세를 못내면 단전반원이 먼저 찾아가지만 호주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전기세를 못내면 가장 먼저 사회복지사가 찾아가서 빈곤문제에 접근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그래서 우선 정부의 역할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빈곤문제 연구소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상담원의 파견과 3천억원에 달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활용 그리고 에너지 기본권관련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단전가정에 대한 인권개선안을 권고할 예정이다.
출처 : CBS사회부 임진수 육덕수 기자/에이블뉴스 제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