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때 장애→18살 때 집 떠나→26년간 표구
22일 오후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 진재운(45)씨가 2억7천만원인 자신의 아파트를 팔고 부근의 3천500만원짜리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지체3급 장애를 안고 20여 년간 어렵게 모은 돈으로 분양받았던 아파트였지만 최근의 생활고 때문에 내다팔 수밖에 없었다.
진씨는 현재 집 인근에서 표구상을 운영하고 있는 수준급 표구사다.
취향이 까다롭다는 일본 관광객들이 서울 인사동 화랑거리에서 사갔던 일본화 족자는 대부분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최근 값싼 족자들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그의 자리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높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도 매출이 갈수록 줄고 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영업활동을 벌이지도 못하고 있다.
다리 장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아직도 대인기피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돼 한편의 휴먼 드라마 같은 그의 45년 인생은 5살 때 운명의 갈림길에 놓인다.
전남 담양에서 4남 3여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5살 때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이후 혹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가족들 특히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폭력을 일삼는 등 사실상 자식으로 대하지 않았다.
"제일 험한 욕 어머니에게 다 듣고 다리가 부러져 나가도 일을 시키신 게 어머니였고 너무 미웠다. 울면서 일했고 울면서 학교를 다녔다" 야속한 어머니를 돌이키던 진씨의 눈가가 금새 붉어졌다.
몇 차례의 낙제와 또 몇 번의 자살기도 끝에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그는 가족들의 등살에 떠밀려 고아 아닌 고아가 돼 고향집을 나섰다.
어린나이에 냉혹한 사회에 내버려진 그가 몇 년간 이곳저곳을 떠돌다 79년 우연한 계기로 취직을 한 곳이 바로 광주의 한 표구상.
다리 장애는 표구 작업에 절대적인 핸디캡이었지만 장애인으로 입어왔던 가족의 핍박도, 주변의 타박도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던지라 표구는 오히려 진씨에게 안식처가 됐다.
그래서 시작된 표구 외길 인생길에 그는 진도와 서울 등의 표구사를 거쳐 2003년 부천에서 드디어 개업을 하기에 이른다.
장애가 평생의 장애물이 됐던 그로서는 신체장애를 징검다리삼아 마련한 고난의 열매였다. 그러나 동료 장애인들의 생존권 역시 자신의 앞가림 못지않게 중요했다.
개업하기 전 그는 동료 장애인 노점상 24명을 이끌고 서울 황학동의 장애인 노점상인들의 생존권 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2년간의 끈질긴 투쟁 끝에 구청으로부터 노점상을 허락받았지만 동료들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4500만원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는 당시상황에 대해 "왜 장애인이 사람들한테 끌려가야하는지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장애인이 노점에서 판을 깔고 장사를 해야하는가, 내가 나서서 뭔가를 해야겠구나 해서 그날 회사에 사표를 내고 달려갔다"고 회상했다.
그 덕에 지금도 동대문운동장 주변에는 장애인 노점상들이 보금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다른 곳에서 고통 받고 있을 장애인들을 돕지 못하게 돼 마음이 편하지 않다.
또 아파트를 버리고 전세 살림에 내몰리게 돼서 가족들에게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그에게는 자신의 표구 외길인생의 동반자인 부인과, 또 심신 장애인인 자신에게서 소생했으면서도 밝고 맑게 자라고 있는 두 자녀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