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의 의미가 변했다. 직장생활을 한 후에 대학원에 들어오는 이유가 95학번과 85학번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85학번은 업무 능력과 전문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공분야와 관련된 직장에 다시 취업했다. 반면 95학번은 첫 직장과 분야가 다른 대학원 학과에 진학하며 졸업 후에도 역시 새로운 직종에 취업했다. 또 진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경력 간 공백 기간이 85학번보다 길게 생겨, 비경제활동 기간이 상대적으로 훨씬 길어졌다.
95학번은 첫 직장을 그만둔 후 대학원에 진학하기까지 보통 6개월 안팎에서 길게는 1년의 무직 기간을 가졌다. 진로나 적성을 찾아가는 시행착오 또는 준비 기간이 늘어나면서 비경제활동 기간 역시 늘어나게 된 것이다. 85학번은 공백기간이 1개월 정도가 전부였다. 95학번 중에서는 해외 유학을 간 두 명만 공백기간이 거의 없었다. 외국 유학은 사전에 계획적으로 준비하여 바로 실행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대학원을 재취업 지렛대로-
‘취업→대학원 진학→취업’ 형태를 보인 95학번 8명 중 첫 직장과 동일한 직종으로 재취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ㄱ씨(30·여)는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인문·사회계열인 전공과는 다른 국제통상을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전력부문 공기업에 취직해 다니고 있다. 새로운 진로를 결정하지 않고 일단 첫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기까지 무직상태로 1년을 보냈다. 그는 은행을 그만둔 이유로 ▲직장생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사전 이해가 전혀 없었고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 등의 내용을 꼽았다.
그는 “대부분의 조직생활이 단순한 업무 및 잡무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컸다. 또 은행의 특수한 성격상 ‘언니’들의 위계질서를 경험해야 했는데 학력(고졸, 대졸)과 고용형태(정규직,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근무경력과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면서 오는 이질감도 직장생활을 어렵게 했다. 극도로 자유로운 대학생활과 보수적인 회사 생활의 차이가 너무 컸다”고 회상했다. “일단 직장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고, 이후 구체적 계획을 세우기까지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도 덧붙였다.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직장 문화 때문에 사직을 결심하고, 이를 계기로 직종을 바꾸거나 자신이 하고 싶어하던 일을 찾아 나가기로 결심한 사람이 많은 것도 95학번의 특징이다.
카드사에 근무하다가 대학원에 진학, 앞으로 음반회사 등 대중문화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ㄴ씨의 사례. “대기업하면 뭔가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업무가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청업체 ‘등쳐먹고’, 성과급제 한다면서도 핵심 네트워크에 가까운 사람 위주로 고과를 몰아줬다.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 ‘출신 고등학교’부터 따지는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도 없었다. 386세대까지만 해도 조직에 충성하는 문화에 적응하는 것같아 보이는데, 나는 도저히 안됐다. 1990년대 중반 학번부터는 문화소비 세대로, 윗세대하고는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진로변경때 6~12개월 ‘공백’-
그는 “여전히 경직돼 있는 조직문화 때문에 결국 창의적 인재들이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연·학연 중심으로 충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여성에게 여전히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도 평가한다. 취업 후 다시 대학원에 진학한 95학번 8명 중 6명이 여성이기도 하다.
대학원 졸업 후 공기업, 공공기관 등 민간기업이 아닌 곳과 문화계열 업종을 선호하는 것 또한 눈에 띈다. “직업 안정성도 떨어지고, 경쟁은 치열하고, 일도 재미없는 곳에서 일하느니 직업 안정성과 개인 시간이 분명한 직종을 택하거나 아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과감히 선택하는 것”(ㄱ씨의 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85학번은 5명 모두 대학원 진학 전 직장과 같거나 비슷한 계열의 직업으로 재취업했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다가 공부한 후 광고학 교수가 된다든지, 광고 관련 마케팅 조사 기관에 근무하는 식이다. 학계에 있던 1명을 제외한 4명은 모두 경영 관련 전공을 했다. 첫 직장에서 대학원으로 넘어가는 시간도 1개월이 대부분이어서 업무 연장성 상에서 경력 관리를 위해 진학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첫 직장에서 나와 다른 직장을 물색 중인 ㅅ씨는 “전공과는 무관하게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취업 이후에도 적응에 실패해서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는 악순환은 대부분이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출처 : 경향신문 기획취재부 임영주·김종목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