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특성도 이해 못한 채 수사·재판 진행
경찰·검찰·법원 무지로 억울한 피해자 발생
“제 아들이 6학년 여자아이를 강간하려고 하고, 폭행을 했다고 경찰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5살 조카아이한테도 맞고 우는 아이인데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억울하다.”
지난 16일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개최한 2005년 인권상담 분석결과 발표회. 사례발표자로 나선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갖고 있는 김모(18)군의 어머니 이모씨는 자신의 아들을 성폭력 범죄자로 몰아간 경찰과 검찰, 법원에 분노를 표했다.
김군은 지난 해 5월 4일 6학년 여자아이를 30분 정도 쫓아다니다 집안으로 따라 들어가 폭행하고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경찰 5명에 의해 긴급 체포돼 재판을 받고, 그 결과 현재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고 있다.
김군은 큰집에 다녀오다가 피해자인 초등학생이 경찰에게 이야기한 가해자와 옷차림, 외모 등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피해자의 집에서 2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노상에서 긴급체포된 것.
하지만 혐의 내용은 김군의 장애특성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어머니의 설명이다. 이씨는 “내 아들은 아주대학 병원에서 사회화 능력이 3~4세 전후밖에 안된다는 판명을 받은 아이인데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과 검찰, 법원의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김군이 불합리한 처분을 받았다고 담당 변호사는 말한다.
이번 사건의 변호를 맡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법률위원 고영신 변호사는 “체포 당시 5명의 경찰은 수갑을 채워 김군을 연행했고, 몇 마디만 나눠보면 금방 장애 정도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체포 후 보호자에게 통지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어머니 이씨는 “경찰서에서 형사가 아들에게 ‘일이 잘 해결될 거라면서 지장을 찍으라’고 해서 아들도 찍고 나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서 꾸민 내용을 읽어보고 지장을 찍어야 한다는데 눈이 나빠서 한글자로 못 본 채 지장을 찍은 것이었다. 너무도 억울하다”고 말했다.
특히 고 변호사는 “경찰은 정신지체장애 2급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면 질문자의 질문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답변을 도출해낼 수 있을 정도로 정신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긍정적인 형태의 질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냄으로써 김군을 가해자로 확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군측은 재판 과정에서도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경찰, 검찰은 정신지체장애인의 경우에도 성욕이 있고 성욕은 식욕과 함께 1차적인 욕구이므로 그러한 욕구를 느낄 경우 이를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법원도 재판초기 이러한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군측은 변호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신지체장애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구했고, 다행히 담당판사는 김군이 피해자를 성추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다만 예방적 차원에서 보호처분을 내렸다. 김군은 현재 1주일 1번씩 법원이 지목한 목사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고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이 사건 초기부터 장애의 특성이 이 사건의 중요한 판단요서임을 인식했다면 김군은 보호처분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피해자에게 성추행을 한 가해자를 밝힐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희선 팀장은 “경찰의 수사방식대로라면 김군과 같은 정신지체장애인들은 경찰에 의해 얼마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도 김군과 같은 사례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고 밝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용호 소장은 “경찰과 검찰에게도 장애인 인권 교육을 시켜야한다. 장애의 특성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장애에 대한 특성을 모르고, 법률적 판단만을 하려고 하고 있다. 얼마 전 대법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러한 의사를 전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출처 : 에이블뉴스 소장섭 기자 |